-옮긴이의 말 중-
"이 책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지식의 윤리라는 것인데, 윤리는 주어진 것이 아니고 객관적인 인식 위에 새로운 윤리를 구축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모노는 그러한 입장에서 기왕의 종교와 철학을 철저하게 공격하고 있으며, 이것이 사상계에 커다란 파문을 던졌다."
최근 가장 머리가 아픈게, "객관"인데....이것에 따라 대화가 가능하기도 하고, 윤리가 재구성 되기도 하고, 사랑도.....아 참내~
객관이라는 것에 대한 사고가(생각이) 뭐가 중요할까.....라고 주장하는 사람...중요하다. 로마시대에는 주체가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했간디?! 어차피 자연은 완벽한 객관이지만, 결국 우리가 보는 것은 인간의 객관이다.
17p.
"겸허는 학문에 종사하는 사람에게는 어울리는 것이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깃들여 있을 그들이 지켜야 할 사상에는 합당한 것이 못 된다. "
*책에서 문제만을 빌려오고, 서술은 마음대로...ㅡㅡ;;
"마지막으로 불확정성을 일으키는 더욱 근본적인 원천이 미시적 레벨에 존재하는데, 이것은 물질 자체의 양자적 구조에 기인하는 것이다. 돌연변이는 그 자체로서는 미시적-양자적 사건이며 따라서 이사건에는 불확정성 원리가 작용한다. 요컨대 그것은 본성 자체가 본질적으로 예견이 불가능한 사건인 것이다.
1. 우리의 만남은 운명(필연)인가?
운명이라는 단어를 목적이라는 의미가 묻어있는 것으로 정의한다면, 우리의 만남은 운명일 수 없고, 우연에 불과하다. 예를 들면 우리가 그것을 컵이라 부르든, 용식이라 부르든 물을 담고있는 둥그런 물체는 존재 한다. 우리가 얻고 있는 목적으로서의 결과물인 컵이나 용식이는 자연(물을 담고 있는 둥그런 물체)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다. 즉 목적과는 상관없이, 자연적 사건은 발생한다. 우리의 만남은 필연이 아닌 우연이다.
2. 필연 이라면?
필연이라는 것은 어떠한 사건이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과 연관 되는데, 이는 사전적으로나 사후적으로나 동일하다. 필연이라고 한다면 오늘 사다 먹은 문어는 내가 무슨 수를 썼더라도 내입으로 들어왔을 것이다.(이는 다분히 사후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대부분 필연은 사전과 사후를 구분하지 않는다 혹은 못한다.) 내가 갑자기 문어를 먹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이 예정 되어 있었다.
이러한 필연이라는 생각은, 문어먹는 행위의 요소가 애초에 나에게 내재해 있음을 전제로 한다. 문어를 먹는 것에 있어서 나의 자유로운 주체는 없게 된다. 나는 이미 셋팅된 경로를 따라서 문어를 먹을 뿐이다.
3. 필연이라는 생각이 현실 속으로 뻗어나올때...
굉장히 심플한 개념인 필연이라는 것이 현실 속으로 뻗어나올때는 온갖 형태로 뒤틀리면서 뿌려진다. 한번 형성된 지배구조는 아무런 비판 없이 이미 우리안에 내재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목적적으로(또 사후적으로) 해석되면서, 약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약해진 것이며, 강한 사람은 당연하게 강해진 것이다. 컵이라는 물건은 물을 담을 수 만 있으며, 절대 꽃을 담거나 할 수 는 없게 된다.
이렇게 목적의 차원, 필연적으로 현실을 해석할 때 '진실한' 인식에 도달하는 것은 어려워진다. 또한 다른 사람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강화되고 정당화 될 수 있다.
4. 운명이라는 것...
완벽한 객관의 세계인 자연에서는 어떠한 필연도 얻을 수 없다. 사후적으로 우리 자신이 필연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도 사실은 수 많은 우연의 시체위에 서 있는 또다른 우연일 뿐이다. 과거 특정시점에서 출발한 수 많은 가능성들 중 오직 하나만이 오늘에 도착하게 되는데, 우리는 이 하나의 가능성이 뚫어 놓은 길을 사후적으로 바라보면서 깔끔한 길이라고 착각하는 것이다. 사실은 현시점에서 우리가 볼 수 없는 수 많은 막힌 길들이 있었음에도...
"운명은 그것이 만들어짐에 따라서 기록되는 것이지 사전에 기록되어있는 것이 아니다."
5. 미시적 세계와 거시적세계의 연관성
최초 미시적인 양자적 세계의 불확정성을 근거로 거시적 우연성을 설명(주장?) 하였다. 그러나 거시의 작동 방식과 미시의 작동 방식이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다면 이러한 이야기는 받아 들일 수 없을 것 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상호연관성을 찾아본다.
자크모노는 DNA에 대한 정보번역을 이야기 하면서 '번역의 비가역성'을 언급한다. 즉 정보가 단백질에서 DNA로 역류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 한다. 이경우 단백질과 DNA는 상호 다른 차원의 작동원리를 가진다. "그것은 근본적으로 데카르트적인 것이지 헤겔적인 것은 아니다. 세포는 바로 그러한 것이다."
다른 작동원리를 가진다 하여도 헤겔적인 것에서 데카르트적인 것으로 정보가 흘러감에 주목해야 한다. "물리학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바에 의하면 어떠한 미시적 존재도 양자적인 혼란을 피할수 없을 것이며 이것이 거시적인 계에 축적되면, 서서히 이루어지기는 하지만 틀림없이 구조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이 우연을 근본적 환원하는데 있어서 현실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빈공간이지 않을까 생각 한다. 즉 여름에 부는 태풍은 최초 아주 미약한 어떠한 기압차이로 생겨나는 것인데, 이것을 역으로 추적하는 것이 현재의 수준에서는 불가능한 것 처럼 말이다. 미시 수준에서 거시로 연결되는 고리들을 모두 찾지는 못한 것이다. 하지만 모른다고 없는 것은 아니니...찾지 못한 것을 이유로 연결고리의 부재를 이야기 하기는 어렵다.)
6. 우연과 필연의 빈 공간
필연이라는 것이 현실로 뻗어나올때 처럼, 우연도 현실로 뻗어 나올때는 온갖 기괴한 형태로 꼬이면서 뻗어나온다. 따라서 현실에서의 우연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고민은 여전히 남는다.(우연이니까 당연한 것 이겠지.) 미시적 세계에서 데카르트가 부재함이 밝혀졌고, 거시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임은 현대 철학에서나 과학에서나 자명해 졌다. 이로써 우리는 지겨운 친구, 시지프를 또(!!!!) 만나게 되는데, 경계만이 존재하고 알맹이가 없는 시지프의 내면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과제도 여전하다. 또한 새로운 윤리라는 지난한 문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1. 필연이라는 것에 목적이라는 의미가 묻어있는 것으로 상정한 것은, 자연이라는 것의 개념과 대비하여 그렇게 한 것입니다. 자크모노는 자연과 인공을 구분 할때, 다른 여러가지 기준들을 들지만 의도성이라는 것에 중요한 포인트를 두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자연이라는 것을 해석할때, 의도(목적)가 포함된 해석은 필연적(^^;)으로 자연에 대한 잘 못 된 해석을 하게 됩니다. 즉 태양은 따뜻하게 우리를 비춰주는 것이 아니죠.....이는 의도적으로 함정을 파서, 사전적으로 개념상 꼬투리 잡기를 차단한 것인데, 매우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집니다.
#2. 환원주의로 대표되는 과학에 대해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고민되기도 하다가 안되기도 하다가, 헛갈리고 있다. 환원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여, 자유로운 주체라는 단어가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죠. 나는 자유로운 주체에서 자유를 '환원불가능한'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기 때문에 '자유'는 어떻게 보면 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자크모노도 환원주의의 입장이라고 파악됩니다만, 저의 무지로 인하여 빈 공간(무식의 공간이 겠지만요.ㅡ,.ㅡ)이 열리면서 운신의 폭을 찾은 느낌입니다. 도킨스의 책들을 읽었을때 느껴지던 불편함은 저의 무식에 근거한 것 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3. "우연이든 필연이든 상관없이 현실은(자연은) 이미 완벽한 객관이다. 따라서 헛소리 집어치우고 너 방청소나 해라"라는 문장에 대해서는 언젠가 전화상으로 들은 문장 하나를 이야기 해줍니다. "그것은 인간의 객관이 아니죠. 인식 밖에 있는 것은 이미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생각 하기에도 '상관없는 완벽한 객관은' 지금 아마존 정글 활엽수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서 열매를 오물거리는 원숭이와 저의 관계와 다름없다고 느껴 지네요.
신년인사 왔습니다. ^^
답글삭제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