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7일 화요일

<가족의 탄생..아니고 발견>


<가족의 탄생..아니고 발견>
'조심성이 풍부한' 유다가 배신감을 느꼈다고 했지만, 사실 모든 것은 나의 급한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다른 변명거리를 찾자면, 그날(언젠지는 가물가물..), 술을 먹었지만 우리는 일주일에 하나씩 글을 올리기로 했었다, 나는 '일주일 동안 너 하나 나하나'의 뜻으로 말했는데, 유다는 '한주는 네가, 한주는 내가'로 받아 들였나 보다. 사후에 다투지 않았던 것은 '술자리에서 한 말은 효력 없음'이란 주도酒道를 배워서다. 하지만 지금와 생각 하니 다투지 않은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최근에 벌여놓은 일들이 많아(시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내 capa가 이정도 밖에 안되는 것이지. 앞글에서 추석이야기와 더불어 얽히고 설킨 우리네 가족들의 이야기가 나오길래, 나도 평소 생각 하던 가족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지난주 금요일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다. "복숭아 보냈는데, 재호(막내이모 아들) 한테 좀 갔다 줘." 복숭아....

추석 때 시골에서 복숭아를 몇개 받아왔는데, 주말에 친구들이 와서 다 해치우고 갔다. 그놈들은 당구를 치고 와서, "맛있다"는 말 한마디 없이 묵묵하게, 새벽 1시에! 그걸 다 해치웠다. 아참! 그 말은 했었다. "니들꺼라?" "응, 어머니가 뒷밭에 심으신 거야." "어 그래?! 맥주하나 사온나.." 써글 것들.....나도 하나를 먹어보았는데, 향이 굉장히 좋고 맛있었다.

여튼 어머니 전화를 받고 나서 '벌써 스물이 훨씬 넘은 조카들을 챙기는 마음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나도 재호를 생각하면 어릴 때 가까이 살면서 봐준 기억이 난다. 하루는 어른들도 없이 혼자서 재호를 봤는데, 우는 애를 달래다달래다 안 되서 같이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애가 애를 보다보니 감당이 안되었던 거지. 그런 추억(?)이 있지만, 어머니처럼 애잔한 마음은 아니다. 내가 나이를 더 먹는다 해도, 어머니처럼 그럴 것 같지 않다.(지금 내 조카들이야 한창 이쁠때니까, 잘 해주지만서도.)

가족이란 것은 무엇일까. 무조건 지켜야 할 그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어느 날은 그런 듯 하다가도, 어느 날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니까. 예전에 기타노 다케시 감독의 인터뷰를 봤었는데, 그때 이런 말들이 오간다. "당신에게 가족이란 어떤 의미 인가요?" "음...가족이란 누가 보지만 않으면 갖다 버리고 싶은 존재들입니다." 그때 인터뷰를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다. 누나랑 같이 살던 시절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떨어져 살다가 다 커서 같이 살려니, 엄청 싸우던 시기였던 걸로 기억한다. 하루는 거실 TV 때문에 싸운적이 있는데, 발단은 EBS다큐멘터리였다. TV를 잘 안 보던 나였기에 거실 TV는 언제나 누나 차지였다. 어느날 내가 보고 싶은 다큐가 있어서 부탁을 했는데, 누나는 양보를 하지 않았다. 그때 내가 한 말이 '거실은 같이 사용하는 공간인데, 내가 이제까지 양보 했지 않느냐, 오늘 하루는 누나가 양보할 수 있는거 아니냐?!' 였는데, 누나의 대답은 '넌 이런거에도 니꺼 내꺼 따지고 살았냐?!' 여튼 그래서 투닥투닥....기억을 떠올려 보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기타노 다케시의 말처럼 누가 보지만 않으면 갖다버리고 싶은 존재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엄청 싸우는 사이들은 맞는 것 같다.

<가족의 탄생>
난 이 영화에서 엄태웅이 고두심을 데리고 오는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든다. 고두심의 머쓱한 표정과 문소리의 알 수 없는 반응.

어느 누구보다도 서로를 잘 아는 사이이기도 하면서, 그렇기 때문에 다른 누구보다도 상대에게 더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존재 들. 그게 가족 아닐까. 더구나 무슨 짓을 해도 "저 사람이 내 엄마야, 내 아빠야, 내 형 누나야"라는 명제에서 벗어 날 수 없게 만드는 존재들. 물론 앞에 수식어는 붙일 수 있다. "저 사람이 (성질 더러운) 내 누나야" 하지만 [내 누나야]라는 말은 어쩌지 못한다. 마치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라는 말로 존재 증명을 하듯이 말이다. 이 증명도 벗어 날 수 없는 형식인데, "니가 생각 하는 것을 어떻게 증명 할 거냐?!"란 공격에도. "나는 '내가 생각 하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거냐'란 생각을 한다, 고로 나는 존재 한다"라며, 뒤로 후퇴하며 순환적으로 증명을 한다. 가족을 말하면서 앞에 붙이는 수식어와 같다. 지금 가족이 있느냐 없느냐 와는 상관이 없다. 그저 다양한 수식어구로 표현이 될 뿐이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자신의 가족을 그토록 미워하거나 사랑하거나 하는 것 아닐까.

가족의 구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면, 어느 날 거울을 보는데 ‘저 코가 왜 저기 붙어있지?’하는 생각이 들면서 징그럽게 보이는 것처럼, 오묘하다. 남녀가 만나 자식을 낳으면 '아빠, 엄마, 아들, 딸'이 되는 것일까. 우리가 가족이란 것과 혈연을 밀접한 무엇으로 생각 하지만,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부모님을 봐도 그렇지 않은가. 일단 그들이 남남이다. 게다가 형수님, 매형. 모두가 남남이다. 하지만 가족인거다. 그래서 내가 생각하기에 가족이란 것은 혈연으로 이어지는 우연의 부산물인 동시에, 자신 혹은 다른 이의 실존적 결단으로 생겨나는 것 아닐까. '그래 너는 내 가족이야!(=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결단 말이다. 

여튼, 그래서 우리가 가족이라는 존재들을 이렇게 까지 생각 하게 되는 것은, 이미 주어진 것 그리고, 타인의 결정과 나의 선택으로 비로소 만나게 되는 '나 라는 존재'의 확인이기 때문 아닐까. 왜 기억도 안 나고, 말도 안 통하는 한국인 부모를 찾겠다고, 게다가 어른이 다 되어서 한국을 찾는 '외국인'도 있지 않은가. 필연과 우연의 씨실과 날실로 이루어진 자기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서 였지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대한민국의 부모들이 살아가면서 자식에게 크게 실망하는 케이스가 두 번 정도 있다고 한다. 첫 번 째는 자식이 대학갈 때.(대한민국에서 거의 유일한 계급투쟁의 장이 교육이기대문이다. 지금 사교육 시장이 이 난리인 점을 생각하면 일면 수긍이 간다.) 두 번 째는 자식이 결혼 할 때라고 한다.(왜 말했지 않나. 실존적 결단이라고.) 두 번의 케이스 모두 자식에 대한 걱정이기도 하지만, '내가 키운 자식이?!'라는 생각에 기반 하여 스스로의 위치를 확인하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자식 뿐 아니라 부모 역시도 스스로의 존재증명을 자식을 통해서 하고자 하는 면이 있다.

일단은 내 마음대로 안 되면서, 대책 없이 나를 깍아 내리기도 하고, 형편없는 나를 증명해주는 존재들이기도 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없는 척하기도 뭐하고, 누가 보지 않을 때 내다 버리기도 힘든 존재들. 이렇게 가족이야기를 하다보니, 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유지하게 하는 가장 큰 힘 중 하나인 죄책감이 고개를 든다. 그래서 땜빵질 해보는 것이 '나를 있게 해줘서 고맙다'이다. (뭐 미워하는 거 보단 덜 힘드니까.) 나라는 사람이 어디서 출발 했는지 알게 해줘서 고맙고, 내 인생 내가 사는데 제일 많이 간섭하면서 크나 큰 장벽이 되어준 것도 고마워. 그 덕분에 내가 이렇게 된 것 같아.'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위로를 하면서 떠매고 가야하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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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처럼 술먹고 안써서 다행.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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