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9일 목요일

<귀신에 홀린듯>


글헌팅?!

몇 년 전 신사에서 친구 클리프를 만난적이 있는데, 눈에 띄는 여성이 있어 용기를 내어 명함을 건넸다. 집으로 오는 길...용기를 낸 그 여성의 문자 "반갑습니다. 저는 김태흽니다." 문자를 몇번 더 주고받고 신사에서 차 한잔 하자며 만났다. 그때 보았을 때는 학생 같은 차림이었는데, 그날 그 여성은 짧은 치마에 눈부신 형상으로 현신하시었다. '맙소사 신이시여!' 카페에 자리를 잡고, 대뜸 물었다. "저 나쁜 놈이면 어쩌시려고 나왔어요?" "그러게요. 정신차려보니 지하철 타고 오고 있더라구요."

 십여일 전 유다와 저녁을 먹기로 약속하고, '술'을 마셨다. 그 자리에서 유다가 제안을 했다. 이러저러한 글쓰기를 하면 재미 있을 것 같은데 어떠냐. 유다가 "글쓰는게 개고생일 수 있는데, 어쩌시려고 오케이 하셨어요?"라고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더라구요." 아마도 그날 마셔버린 정종에 이상한 성분이 들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장님이 장사 시작하고 둘이 와서 그거-정종 큰거- 다마시고 가는 사람들이 우리가 두번째라고 한다.)


늦은 사춘기

 대학교 1학년 때 마라톤 대회를 나간 적이 있는데, 풀코스는 아니었고 하프였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출전을 하게 된 이유는 동아리방에 컴퓨터가 없었기 때문이다.(1등 상품이 컴퓨터였다.) 출발신호가 울리고 '꼭 컴퓨터를 타오마'하는 비장한 표정으로 선배 누나들에게(만) 손을 흔들며 출발하였다. 처음 출전하는 마라톤이라 아무것도 몰랐다. 처음 부터 막 달렸는데, 뒤를 척보니 내가 1등인거라....'아! 이거는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바닥이 드러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둘 나를 앞서기 시작 했고, 결국은 육십 몇 등을 했다. 이번의 글 쓰기도 이런 결말을 가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들기도 한다. 이제 까지 써온 글이란, 술 먹고 기분업 된 상태 거나 번뜩 머리를 스치는 생각을 단숨에 후다닥 써내려간 게 대부분이라, 마라톤이라기 보단 단거리 형태의 글쓰기였다. 처음으로 장거리를 출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인데, 좋은 성적 보다는 완주를 목표로 "쉬지 말되, 무리 하지 않고"를 기본으로 하여 가보려고 한다.

 걱정뿐 아니라, 장거리를 달리면서 발견하게 될 또 다른 내 모습에 대한 기대도 있다. 남사스러운 고백이지만(내 주변 지인들은 몇번 들었을 것이다.), '나는 20대로 부터 멀어질 수 록 행복 해지고 있다.' 그렇다고 30대 이전의 시간들이 좋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지금 보다 자유 시간도 더 많았고, 친구들과 재미 진 놀이도 많이 했었다. 하지만 서른 중반이 코 앞인 지금 발견하게 되는 기분 좋은 것은 이전과 조금 다르다. 스스로에 대해서 상당부분 정리가 되면서, 받아 들여야 할 것과 개선해야 할 것들이 보인다. 대부분의 인간은 사춘기 때 이런 것을 정리 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제야 정리하고 있다.

 늦은 사춘기를 보내게 된 이유는, 어쩌면 어린시절에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고 살아와서 그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부모 또는 선생님이 무서워서라기 보다는 친구들의 일탈이 시시하게 느껴졌다. 별다른 재미를 못느꼈다고 할까. 아직 기억나는 것이 수능이 100일 남은 날, 백일주를 마신다고 3학년 대부분이 야자 땡땡이를 쳤다. 넓은 도서관에 나를 포함해서 10명 정도 남아 있었다. 특별히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공부에 목맨 그런 학생도 아니었는데, 지금 생각 해보면 나란 놈은 참 어정쩡한 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테잎이 늘어질 때까지 봤던 영화

이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보내던 내가 딱 한번 영화를 보려고 야자를 땡땡이 친적이 있다. 그래서 본 영화가 "저지드레드"  내용은 잘 생각이 안 나고, 실베스터 스텔론이 주연으로 나왔다. 주연 배우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도 신기 한데, 왜냐하면 사실 그 영화는 '날아다니는 오토바이'가 나온다 해서 보러 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날아다니는 것에 열광했는데, 백투더퓨처 같은 경우는 대여한 비디오 테잎을 반납하지 않고 결국은 샀다. 서른 번은 넘게 봤던 것 같다. 그놈의 스케이트보드 때문에. 여튼 그날 기억나는 또 하나는 시골극장이라 손님이 거의 없었는데, 그 극장안에 혼자 였다.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누가 어깨를 툭친다. 모르는 아저씨...."니 이 영화 볼래?" 알고 보니 영사기사 아저씨였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그 영화를 혼자서 봤다. 생각해보니 이렇게 혼자소심하게 영화를 보는 것으로 사춘기를 땜빵하려고 했으니, 서른이 넘어서 사춘기를 겪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 한다. (도둑놈 심보. 쌤통이다!)


영화로 글을 써보자고?

 하....군대를 가기 전 까지 영화를 엄청 봤었다. 개봉 영화는 거의 다 본 듯하다. 친구와 같이 보러 가면 많이 볼때는 4편까지 봤는데, 3편까지 보고 친구 먼저 보내고 나머지 한편을 혼자 보고 오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엄청 착한 거 였다. 나 같으면 영화관을 폭파 시켰을텐데. 그렇게 많이 봐서인지, 아니면 스프린터형 인간인 성향 때문인지 몇 년 전까지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었다. 그 후 드문드문 몇 편씩 봐왔는데, 영화로 '심드렁'한 글을 써보자는 제안에 정종을 코가 삐뚤어지게 마신 후 동의 했다. 최근에 영화에 대한 흥미가 서서히 살아 나고 있던 차라서 다행이라도 생각 한다. 유다 말대로 책보다는 투입시간이 적고, 좀더 수동적이 행위라 많은 에너지를 쏟지 않아도 되는 저비용 고효율의 아이템으로 사료된다. 앞으로 종종 영화를 봐야겠지만, 그동안 봐 두었던 영화를 재활용(?)할 수도 있으니 조금은 안심이다.


관계의 본질은 쓸림

 '진중한 준세기' 라는 소개에 대해 나도 보답을 해야 겠기에......책상의 모양이 둥근지 네모난지 눈을 감은 상태로 알 수 있는 방법은 무얼까? 그렇다. 모서리를 더듬어 보는 것이다. 어디가 끝인지 모르고 더듬거리다, 책상이 끝나는 지점을 만져 보면서 책상의 모양을 알게 되는 것이다. 관계라는 것도 비슷하다고 생각 한다. 내가 끝난 지점, 외부에 있는 존재와 쓸리면서 파악 되는 것이 관계의 모습이다. 쓸림이 없다는 것은 관계도 존재 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모든 관계는 쓸림을 전제로 한다. 정확하게 자기와 일치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게 관계라고 할 수 있을까.(방안에서 벽을 보고 혼잣말을 하는 것이겠지) 그런 면에서 유다는 나에게 상당히 많은 쓸림을 주는 존재이다. 우리 관계의 특징을 살펴보자면, 원래 똑같은 놈들끼리 있으면 편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편하지가 않으니...이런 면에 비추어 볼 때, 교집합이 특징인 관계라기 보다는  다름이 특징인 관계라는 생각이다. 의외로 조심성이 '풍부'한 친구에게 짧은 생각으로만 연명하는(머리에서 글이 나온다기 보다, 척추에서 손으로 신호가 바로 전달되는) 내 글이 하나의 쓸림으로 작동하면서 어떤 통증으로 다가가지 않을까 (정말)잠깐 걱정하다가, 바로 폐기한다. 쓸림은 중립적인 것이라 다루기 나름.




#1. 유다라고 이름을 정한다기에 '배신의 컨셉'으로 나는 베드로로 하려고 했으나, 기독덕후들 같이 보일지도 모르다는 우려가 있어. 그대로 준세기로 가기로 했다. 게다가 김유다는 술집이름이라고 한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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