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4년 전 여름 어느 날 신림동으로 형이 찾아 왔다. 둘 모두 대충 때우는 스타일이라서, 아무 음식점이나 들어가서 먹었는데, 그날은 왠일인지 형이 "우리 후식으로 뭐 맛있는 것 먹자" 하길래 당시 애들 버글거리던 [레드망고]엘 갔다. 아니나 다를까 애들은 버글 거리고 있었고, 남자끼리 온 사람들은 우리 뿐이었다. 형이나 나나 이런데 첨 와본 촌 사람들...대충 2인분 시키고 나니 "손님 토핑은 어떤 걸로 하실 겁니까?" ‘으잉?! 토핑이 뭐여..쩝..’ "골고루 종류별로 주세요" 그리고 우리는 요거트 위에 견과류가 개밥처럼 수북하게 쌓인 그릇을 받았다.
#2. 이때도 여름날, 주말에 형과 약속을 잡고, 회계실무자 교육이 있다는 숙명여대로 갔다. 내심 기대를 하고 갔는데....캠퍼스는 한산....음...뭐 여튼....강의가 끝나고 뭐 먹을까 고민을 했다. 오랜만 에(사실은 처음) 우리도 애들 많이 간다는 [아웃백]을 가보자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뭐가 많았다. 그래서 우리는 편하게 셋트를 시키기로 했다. 하지만 셋트도 종류가 많았다. 이때 형 왈 "우리는 가족끼리 온 거니까 패밀리 셋트 먹자" '아~ 역시 사회생활 오래한 사람은 다르군.' 그날 6시까지 공짜로 제공되는 맥주는 각각 3,000cc씩 먹었지만, 음식은 다 남아서 포장해 왔다.
시간이 지나서 '왜 그때 우리는 종업원들한테 세세하게 물어보고 주문 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봤다.
토핑이 뭔지 모르든, 패밀리셋트가 패밀리들만 먹는 것으로 알았든 문제 될게 없었다. 문제는 살짝 "쪽팔렸다"는 것이다. 요거트 위에 저런 것들을 올려먹고, 패밀리 셋트는 가족들이 먹는 게 아니라 패밀리들이 먹을 만한 양을 의미한다는 것을 모른다 해도 부끄러워 해야할 이유가 없었지만 부끄러웠다.
자본주의는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섰다. 물건을 팔아먹기 위해서 "우리 차는 싸지만, 튼튼합니다"라고 광고하지 않고, "이 차를 탄놈은 갠춘한 놈이고, 여자들이 기냥 넘어 온다"라고 한다. 물건에 새로운 욕망을 입힌다. 차랑 갠춘한 놈이라는 것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렇다고 넘어오는 여자는 또 뭔가....자본은 차(상품)와 욕망을 결합시켜 인간이 소비 하도록 만든다. 아직도 잘 굴러가는 12년 된 차를 폐차 시키고 새 차를 사고 싶게 만드는 방법으로.
상품과 욕망의 결합이 새로운 소비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 만큼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러한 조합은 인과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둘 사이의 관계를 어떤 맥락(인과관계)으로 만들어버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마치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라는 당연한 것을 몰랐던 사람들 처럼 부끄러웠던 것이다. 토핑과 요거트, 패밀리 셋트와 양...이런 것들은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라는 것 과는 다르다. 물에 관한 것은 조리(條理)이지만, 토핑과 패밀리 셋트는 조리라기 보다는 관념에 가깝다.
소소한 일들에서도 이렇지만 근본적인 것에서도 자본은 일정한 맥락을 만들어 낸다. 많은 인간이 삶의 이유라고 착각하고 있는 행복이라는 것을 보자. 많은 통계가 행복은 재화의 보유량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보여 주지만, 인간은 자본이 생산한 맥락을 상당부분 받아들인다. 돈이 많으면 행복하지만, 적으면 불행하다고 느낀다. (실제 돈이 욕망을 충족하는 도구가 되면서 행복이라는 것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지만, 돈만큼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선택이고 결단"이다. 이번 주말에 영업 안가고 애들 데리고 놀러가겠다는 결단, 좀 덜 벌고 놀겠다는 결단.)
이런 맥락들은 승자와 패자의 판단에서도 그대로 작동한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돈을 기준으로 해서 승패를 가르는 것이다. 관리기술 및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한 개인이 관리 가능한 자본의 크기는 거의 무한대로 확장 되었다. 이는 소수에 의한 자본의 지배를 더 용이하게 하는 동시에 자본을 고도화 시킨다. 자본주의의 맥락 속에 사는 거의 모든 인간들이 대부분 열패감을 맛봐야 한다는 의미 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난 내 맘대로 살거야"라고 하면 그냥 미친놈 소리 듣게 될 거고....또 자본을 벗어나서 살아간다는 것이 불가능 하기도 하고.....
역사적으로 몇 번의 격변기가 있었지만, 자본주의는 놀라운 유연성을 보여주면서 매번 승리 해왔다. 이런 자본의 유연성 때문에 ['대안'이라는 것은 또 다른 장사일 뿐] 이라는 사례를 수 없이 보았다. 홍수가 났을 때, 어떤 사람이 지붕위 에서 "주여 구해주소서" 하고 기도를 했다고 한다. 조금 있다가 지나가는 배에서 “타”라고 하자 그 사람은 하느님이 구해줄거라며 타지 않았고, 지나가던 헬기에서 태우려하자 마찬가지..결국 그 사람은 물에 빠져 죽었고, 하늘나라에 가서 왜 구해 주지 않았냐고 하느님께 따졌다. 그러자 하느님 왈 "배하고 헬기는 누가 보내준거라 생각 하느냐?!" 이 처럼 방법(대안)이라는 것은 완결된 형태로 드러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근본적인 대안이란 어쩌면 환상이다.) 자본의 홍수 속에서 전혀 자본에 기대지 않은 '순결한' 대안을 기다린다면, 그 사람 처럼 빠져죽는 수 밖에 없겠지.
그래서, 그래서....
맨날 된장만 퍼먹지 말고, 토핑도 올려서 먹고, 패밀리 레스토랑도 '친구(가족말고!)'랑 가끔 가고 해야 겠다.


'개밥처럼 수북'에 빵 터졌습니다. ㅋ ㅋ ㅋ
답글삭제ㅎㅎ그땐 그랬는데, 요즘엔 자연스럽게(?) 물어보게 되더군요.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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